토요일 새벽인 지난 3월 8일 오전 1시30분. 서울 송파구 잠실동 신천역 인근의 한 패스트푸드점 창가에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5명이 앉아 있었다. 허벅지가 드러날 정도로 짧은 치마를 입고 화장도 했지만 학생 티를 감추진 못했다. 주문도 하지 않은 채 수다만 떨고 있는 그들의 옆 테이블에 남학생 네 명이 앉았다. 이들도 음식 주문은 하지 않고 여학생 일행만 힐끗힐끗 쳐다본다. 이내 한 남학생이 머리를 다듬으며 일어나 여학생 일행에게 다가갔다. 잠시 대화를 주고받더니 남학생들만 패스트푸드점을 빠져 나갔다. "아휴 짜증나. 재수 없게 저런 애들이 말을 거냐? 차라리 호빠(호스트바) 가자, 호빠." 여학생 중 한 명인 김양(16)의 말에 친구들이 숨 넘어가게 웃는다. 말을 걸어보니 술 냄새가 풍겼다.
# 장면 1
"찜질방은 심야에 못 들어가고 PC방은 비싸고…"
남학생 10여명 주문도 안 하고 몇 시간씩 죽쳐
"여기 있으면 꼭 저렇게 말 거는 애들이 있어요. 술 마시러 가자, 나이트 가자 그러죠. 맘에 들면 따라가는데 오늘은 애들 상태가 구려서 안 갔어요." 김양 옆에 있던 곽모(17)양이 말을 이었다. "우리가 창가에 앉아있으면 나이트 삐끼(유흥주점 호객꾼)들이 밖에서 쳐다봐요. 아예 안으로 들어와서 나이트 가자고 잡아 끄는 사람도 있어요. 미성년자라고 해도 상관없대요." 이 패스트푸드점은 새벽 4시가 넘도록 취객과 청소년들로 북적대 30분을 기다려도 자리가 나지 않았다.
다음날 오전 2시쯤 서울 은평구 연신내역 근처 패스트푸드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고등학생 박모(18)군 등 5명이 콜라 두 개를 시켜 놓고 앉아 담배를 빼 들고 있었다. 이들은 잠시 후 둘씩 짝지어 나가 담배를 피우고 돌아왔다. "찜질방은 미성년자라고 못 들어가게 하는 곳도 있어요. PC방은 날 샐 때까지 있으려면 비싸기도 하고…. 돈 없을 때 아무것도 안 시키고 앉아있어도 되니까 여기가 좋죠." 박군이 말했다. 곧이어 취기가 오른 십여 명의 남학생이 몰려 들어왔다. 유니폼을 입고 있는 남자 직원이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그들은 아무것도 시키지 않은 채 두 테이블을 차지했다.
# 장면 2
술 취해 들어와 잠자면서 새벽 첫차 기다려
나이트·술집 종업원은 청소년 상대 호객 행위
한밤중 도시 곳곳에 불을 밝히고 있는 패스트푸드점이 청소년 비행의 온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24시간 운영하는 패스트푸드점이 급격히 늘면서 호주머니 사정이 열악한 청소년들이 새벽까지 이곳에 머물며 눈살이 찌푸려지는 행동을 버젓이 일삼고 있다. 지하철역 부근이나 유흥가에 위치한 '목 좋은' 패스트푸드점은 청소년들에게 24시간 이용 가능한 놀이터가 됐다. 한밤중 패스트푸드점에서 헌팅을 하고, 그렇게 만난 아이들이 함께 술을 마시러 간다. 술에 취하면 이곳에 돌아와 잠을 자고 첫차를 기다린다. 나이트나 술집 삐끼들이 버젓이 들어와 청소년들에게 호객행위를 하는가 하면 패스트푸드점 근처를 배회하며 대상을 물색하기도 한다.
패스트푸드점이 24시간 영업을 시작한 것은 2005년 서울 강남구 청담동 맥도날드가 처음이었다. 이후 버거킹과 롯데리아까지 가세했다. 맥도날드의 경우 전국 250여개 중 100여개 점포가 하루 종일 전원을 끄지 않는다. 24시간 운영되는 맥도날드 점포가 서울에만 55개에 이른다. 맥도날드 관계자는 점포 24시간 운영 배경을 "시장조사 결과 밤에 갈 수 있는 술집은 많지만 식사하고 커피 마시는 공간은 없기 때문에 24시간 운영을 시작했다"며 "특히 금요일에는 나이트 라이프를 즐기는 학생들이나 젊은층이 주 고객"이라고 말했다. 롯데리아와 버거킹도 전국적으로 각각 31개와 9개의 24시간 영업점을 운영 중이다.
# 장면 3
"마음에 드는 상대 만나면 술 마시러 가고
눈치 주는 사람도 없으니 정말 좋아요"
청소년보호법에 의하면 오후 10시 이후 노래방·PC방·비디오방 등은 청소년이 출입할 수 없다. 보호자가 없으면 심야시간에 찜질방도 못 들어간다. 청소년을 각종 유해 환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러한 보호조항에서 패스트푸드점은 예외다. 청소년보호법은 각종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구제함을 목적으로 1997년 3월 제정됐다. 이후 PC방·비디오방 등은 청소년이 이용하기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밤 10시 이후 출입이 금지됐다. 그러나 2005년부터 24시간 영업을 시작한 패스트푸드점은 관련법의 미비한 조항 때문에 청소년 비행 '치외법권 지역'이 된 것이다.
24시간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난 청소년들이 꼽는 24시간 영업점의 '장점'은 한둘이 아니다. 지난 3월 8일 신천역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난 김모(18)양 일행은 "종업원들은 우리가 주문을 하든 말든 상관 하지 않아서 눈치 볼 사람이 없어 좋다"고 말했다. 이들은 새벽에 만나면 주로 패스트푸드점에서 머문다고 했다.
"이곳에서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 술 마시러 가기도 하고, 첫차가 다닐 때까지 기다리면서 잠도 잔다"며 "우리한테는 정말 이보다 좋을 수 없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 장면 4
"엄마한테야 '독서실 간다'고 했죠"
2층 구석에선 술자리까지 벌어져
같은 날 새벽 5시에 두 여학생이 패스트푸드점을 나서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다가가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내일은 놀토(학교를 가지 않는 토요일)잖아요. 부모님한테는 독서실 간다고 했어요. 새벽에 친구들하고 전화하다가 마음 맞으면 여기서 만나요. 공원이나 놀이터는 추우니까… 여기 있으면 술 사주겠다는 오빠도 많아요(웃음)"라고 말했다. 이들은 송파구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라고 했다.
하지만 성인들에게는 24시간 패스트푸드점이 불쾌하거나 못마땅한 일 투성이로 느껴진다.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난 대학생 임모(여·22)씨는 "집 근처라서 밤늦은 시간에 종종 패스트푸드점을 찾는다"며 "중고생들이 술 냄새 풍기며 모여있는 걸 보고 눈살이 찌푸려졌다"고 했다. "방학 때는 여기가 청소년들 아지트나 다름없더라고요. 밤인지 낮인지 모를 정도로 애들이 많았어요. 사실 패스트푸드는 청소년 건강에도 좋지 않은데 밤늦게 먹고 있는 걸 보면 괜찮을까 싶죠."
회사원 박모(28)씨는 "야근이 잦아서 밤늦은 시간에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패스트푸드점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월 중순 서울 종로의 한 패스트푸드점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고 했다. "새벽 4시쯤 친구들과 첫차를 기다리고 있었죠. 기둥 뒤에 학생들 서너 명이 앉아있더라고요. 콜라를 마시는 줄 알았는데 캔맥주를 홀짝거리고 있더군요. 제가 첫차를 기다리느라 한 시간 정도 있었는데 종업원은 2층에 한 번도 올라 오지 않았어요. 청소년이 많이 이용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종업원이 무관심한 틈을 타 술을 마시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 우려의 목소리들
종업원 "못 올 곳에 온 것 아닌데 뭐라 할 수도 없고…"
전문가 "탈선 방관하는 격… 또 하나의 우범지대"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은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서울 종로2가에 있는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A씨는 "밤늦은 시간 취객을 상대하는 것도 힘들지만 청소년들이 못 올 곳에 온 것도 아닌데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어 난감하다"고 말했다. 이 종업원은 "친구가 이곳에서 술 마시는 학생도 봤다고 하더라"고 운을 떼자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잘라 말하면서도 "1층에 손님이 몰리면 2층은 당연히 관리가 안 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오전시간에 근무하는 4명의 직원이 햄버거도 만들고 계산도 하려니 1·2층을 모두 관리하기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24시간 패스트푸드점의 역기능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한국청소년연맹이 운영하는 서울시립 이동청소년 쉼터에서 근무하는 김기남(34)씨는 "요즘은 일부러 24시간 영업하는 패스트푸드점 앞에 이동쉼터 차량을 대기 시킨다"고 한다. '이동청소년 쉼터'는 방황하는 청소년에게 직접 찾아가 상담활동·응급치료활동 및 보호활동을 하는 차량이다. 이동쉼터가 청소년이 많이 모이는 곳을 따라 움직이다 보니 패스트푸드점 앞까지 오게 된 것. 김씨는 "업소 안까지 들어가서 학생들을 선도할 수는 없으니까 매장 앞에서 이동쉼터를 홍보하는 것"이라며 "최근 들어 많은 청소년이 쉼터가 아닌 패스트푸드점으로 발길을 돌린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에게 24시간 운영하는 패스트푸드점이 '일시 쉼터'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가출·탈선 청소년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쉼터'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패스트푸드점의 24시간 운영이 청소년의 탈선을 조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청소년의 탈선을 방관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명지대학교 청소년지도학과 이은경 교수는 "한강시민공원도 시민의 편의를 위해 만들었지만 밤이 되면 우범지대로 변하듯 패스트푸드점도 밤 시간에 청소년 유해환경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며 "하루빨리 청소년 보호 및 놀이 시설을 확충하지 않으면 24시간 영업하는 패스트푸드점은 또 다른 청소년 우범지역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찜질방·PC방처럼 패스트푸드점의 심야시간 영업을 규제하고 청소년 출입을 막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며 "밤늦게까지 청소년들의 출입이 자유로운 만큼 종업원들이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 글·사진 = 심선혜 기자 fresh@chosun.com
↑ 패스트푸드점에서 아예 잠을 자고 있는 청소년들.
↑ 유흥주점 삐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매장에서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 24시간 영업을 하는 패스트푸드점. 청소년들이 아무것도 시키지 않고 앉아 있어도 눈치주는 사람은 없다.
# 장면 1
"찜질방은 심야에 못 들어가고 PC방은 비싸고…"
남학생 10여명 주문도 안 하고 몇 시간씩 죽쳐
"여기 있으면 꼭 저렇게 말 거는 애들이 있어요. 술 마시러 가자, 나이트 가자 그러죠. 맘에 들면 따라가는데 오늘은 애들 상태가 구려서 안 갔어요." 김양 옆에 있던 곽모(17)양이 말을 이었다. "우리가 창가에 앉아있으면 나이트 삐끼(유흥주점 호객꾼)들이 밖에서 쳐다봐요. 아예 안으로 들어와서 나이트 가자고 잡아 끄는 사람도 있어요. 미성년자라고 해도 상관없대요." 이 패스트푸드점은 새벽 4시가 넘도록 취객과 청소년들로 북적대 30분을 기다려도 자리가 나지 않았다.
다음날 오전 2시쯤 서울 은평구 연신내역 근처 패스트푸드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고등학생 박모(18)군 등 5명이 콜라 두 개를 시켜 놓고 앉아 담배를 빼 들고 있었다. 이들은 잠시 후 둘씩 짝지어 나가 담배를 피우고 돌아왔다. "찜질방은 미성년자라고 못 들어가게 하는 곳도 있어요. PC방은 날 샐 때까지 있으려면 비싸기도 하고…. 돈 없을 때 아무것도 안 시키고 앉아있어도 되니까 여기가 좋죠." 박군이 말했다. 곧이어 취기가 오른 십여 명의 남학생이 몰려 들어왔다. 유니폼을 입고 있는 남자 직원이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그들은 아무것도 시키지 않은 채 두 테이블을 차지했다.
# 장면 2
술 취해 들어와 잠자면서 새벽 첫차 기다려
나이트·술집 종업원은 청소년 상대 호객 행위
한밤중 도시 곳곳에 불을 밝히고 있는 패스트푸드점이 청소년 비행의 온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24시간 운영하는 패스트푸드점이 급격히 늘면서 호주머니 사정이 열악한 청소년들이 새벽까지 이곳에 머물며 눈살이 찌푸려지는 행동을 버젓이 일삼고 있다. 지하철역 부근이나 유흥가에 위치한 '목 좋은' 패스트푸드점은 청소년들에게 24시간 이용 가능한 놀이터가 됐다. 한밤중 패스트푸드점에서 헌팅을 하고, 그렇게 만난 아이들이 함께 술을 마시러 간다. 술에 취하면 이곳에 돌아와 잠을 자고 첫차를 기다린다. 나이트나 술집 삐끼들이 버젓이 들어와 청소년들에게 호객행위를 하는가 하면 패스트푸드점 근처를 배회하며 대상을 물색하기도 한다.
패스트푸드점이 24시간 영업을 시작한 것은 2005년 서울 강남구 청담동 맥도날드가 처음이었다. 이후 버거킹과 롯데리아까지 가세했다. 맥도날드의 경우 전국 250여개 중 100여개 점포가 하루 종일 전원을 끄지 않는다. 24시간 운영되는 맥도날드 점포가 서울에만 55개에 이른다. 맥도날드 관계자는 점포 24시간 운영 배경을 "시장조사 결과 밤에 갈 수 있는 술집은 많지만 식사하고 커피 마시는 공간은 없기 때문에 24시간 운영을 시작했다"며 "특히 금요일에는 나이트 라이프를 즐기는 학생들이나 젊은층이 주 고객"이라고 말했다. 롯데리아와 버거킹도 전국적으로 각각 31개와 9개의 24시간 영업점을 운영 중이다.
# 장면 3
"마음에 드는 상대 만나면 술 마시러 가고
눈치 주는 사람도 없으니 정말 좋아요"
청소년보호법에 의하면 오후 10시 이후 노래방·PC방·비디오방 등은 청소년이 출입할 수 없다. 보호자가 없으면 심야시간에 찜질방도 못 들어간다. 청소년을 각종 유해 환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러한 보호조항에서 패스트푸드점은 예외다. 청소년보호법은 각종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구제함을 목적으로 1997년 3월 제정됐다. 이후 PC방·비디오방 등은 청소년이 이용하기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밤 10시 이후 출입이 금지됐다. 그러나 2005년부터 24시간 영업을 시작한 패스트푸드점은 관련법의 미비한 조항 때문에 청소년 비행 '치외법권 지역'이 된 것이다.
24시간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난 청소년들이 꼽는 24시간 영업점의 '장점'은 한둘이 아니다. 지난 3월 8일 신천역 근처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난 김모(18)양 일행은 "종업원들은 우리가 주문을 하든 말든 상관 하지 않아서 눈치 볼 사람이 없어 좋다"고 말했다. 이들은 새벽에 만나면 주로 패스트푸드점에서 머문다고 했다.
"이곳에서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 술 마시러 가기도 하고, 첫차가 다닐 때까지 기다리면서 잠도 잔다"며 "우리한테는 정말 이보다 좋을 수 없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 장면 4
"엄마한테야 '독서실 간다'고 했죠"
2층 구석에선 술자리까지 벌어져
같은 날 새벽 5시에 두 여학생이 패스트푸드점을 나서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다가가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내일은 놀토(학교를 가지 않는 토요일)잖아요. 부모님한테는 독서실 간다고 했어요. 새벽에 친구들하고 전화하다가 마음 맞으면 여기서 만나요. 공원이나 놀이터는 추우니까… 여기 있으면 술 사주겠다는 오빠도 많아요(웃음)"라고 말했다. 이들은 송파구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라고 했다.
하지만 성인들에게는 24시간 패스트푸드점이 불쾌하거나 못마땅한 일 투성이로 느껴진다.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난 대학생 임모(여·22)씨는 "집 근처라서 밤늦은 시간에 종종 패스트푸드점을 찾는다"며 "중고생들이 술 냄새 풍기며 모여있는 걸 보고 눈살이 찌푸려졌다"고 했다. "방학 때는 여기가 청소년들 아지트나 다름없더라고요. 밤인지 낮인지 모를 정도로 애들이 많았어요. 사실 패스트푸드는 청소년 건강에도 좋지 않은데 밤늦게 먹고 있는 걸 보면 괜찮을까 싶죠."
회사원 박모(28)씨는 "야근이 잦아서 밤늦은 시간에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패스트푸드점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월 중순 서울 종로의 한 패스트푸드점을 찾았다가 깜짝 놀랐다고 했다. "새벽 4시쯤 친구들과 첫차를 기다리고 있었죠. 기둥 뒤에 학생들 서너 명이 앉아있더라고요. 콜라를 마시는 줄 알았는데 캔맥주를 홀짝거리고 있더군요. 제가 첫차를 기다리느라 한 시간 정도 있었는데 종업원은 2층에 한 번도 올라 오지 않았어요. 청소년이 많이 이용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종업원이 무관심한 틈을 타 술을 마시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 우려의 목소리들
종업원 "못 올 곳에 온 것 아닌데 뭐라 할 수도 없고…"
전문가 "탈선 방관하는 격… 또 하나의 우범지대"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은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서울 종로2가에 있는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하는 A씨는 "밤늦은 시간 취객을 상대하는 것도 힘들지만 청소년들이 못 올 곳에 온 것도 아닌데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어 난감하다"고 말했다. 이 종업원은 "친구가 이곳에서 술 마시는 학생도 봤다고 하더라"고 운을 떼자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잘라 말하면서도 "1층에 손님이 몰리면 2층은 당연히 관리가 안 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오전시간에 근무하는 4명의 직원이 햄버거도 만들고 계산도 하려니 1·2층을 모두 관리하기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24시간 패스트푸드점의 역기능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한국청소년연맹이 운영하는 서울시립 이동청소년 쉼터에서 근무하는 김기남(34)씨는 "요즘은 일부러 24시간 영업하는 패스트푸드점 앞에 이동쉼터 차량을 대기 시킨다"고 한다. '이동청소년 쉼터'는 방황하는 청소년에게 직접 찾아가 상담활동·응급치료활동 및 보호활동을 하는 차량이다. 이동쉼터가 청소년이 많이 모이는 곳을 따라 움직이다 보니 패스트푸드점 앞까지 오게 된 것. 김씨는 "업소 안까지 들어가서 학생들을 선도할 수는 없으니까 매장 앞에서 이동쉼터를 홍보하는 것"이라며 "최근 들어 많은 청소년이 쉼터가 아닌 패스트푸드점으로 발길을 돌린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에게 24시간 운영하는 패스트푸드점이 '일시 쉼터'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가출·탈선 청소년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쉼터'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패스트푸드점의 24시간 운영이 청소년의 탈선을 조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청소년의 탈선을 방관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명지대학교 청소년지도학과 이은경 교수는 "한강시민공원도 시민의 편의를 위해 만들었지만 밤이 되면 우범지대로 변하듯 패스트푸드점도 밤 시간에 청소년 유해환경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며 "하루빨리 청소년 보호 및 놀이 시설을 확충하지 않으면 24시간 영업하는 패스트푸드점은 또 다른 청소년 우범지역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찜질방·PC방처럼 패스트푸드점의 심야시간 영업을 규제하고 청소년 출입을 막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며 "밤늦게까지 청소년들의 출입이 자유로운 만큼 종업원들이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 글·사진 = 심선혜 기자 fres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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